“중앙일보는 중서부 한인 대표 언론입니다”
“모든 것을 다 쏟아부었죠. 누구보다 시카고 중앙일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올해로 45주년을 맞은 시카고 중앙일보 창간을 이끈 홍두영(82) 장로는 ‘영원한 중앙일보맨’이다. 지난 1977년 윤전기 시설을 갖추고 현지판을 낼 수 있는 한인을 찾고 있던 중앙일보 본사는 시카고 중앙일보 발행인 자격을 지역 재력가이자 사업가인 홍두영씨에게 맡겼다. 그 즈음 한 신문에 보도된, 디트로이트 지역 한인 목사의 스캔들 보도를 계기로 지역 목회자들이 그에게 중앙일보 발행을 권유한 것도 중요한 계기가 됐다. 홍 장로는 이후 어빙파크 소재 한인회 건물을 구입하고 수 십만 달러를 들여 자체 윤전기와 암실 및 동판 작업실, 접지기계까지 갖췄다. 그리고 편집 담당 허영진 목사, 공무 담당 권수길 장로, 보도 담당 김영진씨 등과 함께 1년 반의 준비 끝에 1979년 6월 12일 현지판 시카고 중앙일보를 세상에 내놓았다. 하루가 다르게 신문 발행 부수가 증가하고 경영 상태도 개선됐지만 1980년 9월 그는 시카고 중앙일보를 본사에 다시 넘겨야 했다. 당시 동양TV 시험 방송까지 마치면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었지만 전두환 정권의 언론 통폐합 여파까지 겹쳐, 중앙일보를 넘길 수밖에 없었다. 다수의 부동산 매각을 통해 시카고 중앙일보를 성장시키고 본 궤도에 올려놓느라 재정적인 어려움까지 겪은 터라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이후 10년 간 그는 집과 직장, 교회만 오가며 새 비즈니스에 도전했다. “비즈니스에는 탤런트가 있는 것 같다”는 그의 말처럼 스코키 소재 도넛 가게를 인수, 샌드위치까지 판매하면서 사업은 다시 번창했다. 1994년 5000년 김치를, 1998년 식당용 자재용품 업체를 차례로 설립했는데 사업마다 결과가 좋았다. 지난 2000년에는 미국내 한국 식품 전문업체의 하나인 진한식품 시카고점을 인수, 연매출 1000만달러를 달성했다. 이후 건강상의 문제로 은퇴하고 부동산 개발업에 뛰어들었지만 2008년 불거진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개발 중이던 대형 콘도와 쇼핑 센터 분양이 차질을 빚는 바람에 적지 않은 손실을 겪기도 했다. 그래도 그는 ‘먹고 살만큼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사장이나 회장, 대표보다 장로로 불리길 원한다. 한 때 빌딩만 7개를 소유하고 다수의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일궜지만 지금도 ‘홍두영 장로’로 불리는 이유다. “언론은 물건 파는 곳이 아닙니다. 돈을 벌려고 신문사를 하면 안 됩니다.” 시카고를 비롯한 중서부 지역 한인 종합일간지 시대를 연 홍 장로는 시카고 중앙일보가 한인 커뮤니티의 대표 언론으로 변함 없이 자리를 지켜 줄 것을 당부했다. 노재원중앙일보 중서부 시카고 중앙일보 중앙일보 본사 중앙일보 발행